[칼럼/기고]저출산 문제 대응책은 과연 무엇일까.
2010. 02.06(토) 20:06확대축소
오명순 칼럼 / ‘낳아만 주시면 저희가 길러드리겠습니다.’
저출산ㆍ고령화 시대의 위기상황에 대처한 긴급 방안으로 보건복지부가 국민을 향해 내어 놓은 약속이다. 어떻게든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다 키워 줄테니 제발 낳아만 달라는 간곡한 부탁인 셈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야 정부가 대신 해 줄 수 없으니까 그렇다치고 대체 어떻게 키워준다는 것일까. 그를 위한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충분히 준비해 두고 하는 약속일까.


전 세계적 추세인 저출산 문제가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60년 6.0명에서 1983년 2.1명으로 대체출산 수준에 도달한 이래 지속적으로 낮아져 1.48명(1998년) → 1.47명( 2000년), → 1.17명(2002년) → 1.08명(2005년) → 1.12명(2006년) → 1.25명(2007년) → 1.19명(2008년)으로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출산력 감소를 보이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게 세상사라고는 하지만 어찌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이 세계적인 시대적 흐름을 좀 더 일찍 서둘러 재빠르게 읽을 수는 없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의 길거리며 벽에는 지금과는 정반대의 각종 포스터가 붙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등등...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는 1970년대 우리사회의 가장 유명한 표어였다. ‘딸 아들 구별 말고...’로 바뀌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산아제한을 위한 각종 홍보들은 새마을운동처럼 전 국민의 동참을 조장하려는 국가의 의도적인 정책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각 지역 보건(지)소마다 산아제한을 위한 각종 시책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피임법의 홍보와 피임 기구의 보급은 물론 가임여성 불임시술, 남성에겐 정관수술을 권장하여 예비군 훈련 면제 특혜를 주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한 산아제한 정책을 유도하였다. 셋째아 출산 시엔 의료보험 혜택조차도 주지 않는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한국의 산아제한 정책은 중국과 더불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중국은 20년 만에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자 인구증가에 위기를 느껴 한자녀 정책으로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지금은 실질적인 감소상태에 돌입했다고 한다. 본래 산아제한은 여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모자보건의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나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정책이 되고 만 셈이다.


물론 그 시절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자면 전후 혼란기를 거쳐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국토마저 좁아 산아제한을 통한 인구밀도 증가 억제 정책이 필요했음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이삼십 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러한 정책들이 수백 년 전의 이야기인 것도 아닌데, 이젠 제발 아이를 하나만 더 낳아달라고 국가가 통사정하는 꼴이다.


이 얼마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인가! 불과 이삼십 년 후조차 생각하지 못한 개발독재시대의 발상, 그리고 잘못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관행으로 이어지는 관료체제 등의 업보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위기에 몰아넣고 말았다. 정말 미리 예측 불가한 사회 현상이었을까?


불과 삼십 여 년이 지난 지금 저출산이 국가적 위기 문제로 떠오르면서 전국의 지자체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시급하게 되고야 말았다. 각 지자체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새로운 시책을 개발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출산장려금 지급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고 지급액마저 천차만별이다 보니 일부 역기능도 생겨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출산장려금이 많은 반면 가난한 지자체는 장려금 액수가 적은 이른바 ‘출산 장려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불과 수 십 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주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수 백 만원에서부터 셋째아를 출산하면 출산장려금을 수천만 원을 주는 지자체도 있다.


산모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출산장려금을 더 많이 주는 지역으로 가서 출산하고 싶을 것이다. 그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잠시 주소를 그 지역으로 옮겨 원정출산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산모와 짜고 장려금을 타 내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인 자도 있어 국가정책을 악용하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생겼다.


지자체에서 정책을 시행하기 전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사전에 예측하여 제반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않았단 말인가? 이는 탁상공론으로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 근시안적이고 졸렬한 방법이었음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렇듯 무분별한 출산유도 정책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살펴보고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출산장려금 혜택도 중요하다. 그러나 젊은 국민들이 정작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이를 낳아 길러 본 경제적으로 평범한 부모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낳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더구나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지출된다는 우리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부터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사교육비, 양육비에 관한 문제의 선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쉽게 풀 수 없는 난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미혼모에 대한 출산장려금 문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며, 독신자에 대한 문제, 출산장려금 지급 기준 마련 등도 심도있게 생각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미 저출산 문제를 경험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의 정책들을 그대로 모방할 것은 아니지만 좋은 정책은 우리 사회에 알맞게 발 빠르게 수정하여 대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젠 중학교 과정까지 무상교육이 실시되었다고는 하나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러운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결혼 후 10년, 20년 이상이 지나야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이 문제가 된다면, 이 사회의 젊은이들은 결코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며 거부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젊은이들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딩크족’을 양산하게 된 것도 이 사회의 책임이 아니고 무엇인가!


산모를 위한 특혜는 물론이려니와 ‘남편 육아 휴직제’, ‘아동 수당’, '다자녀 세제혜택' 등등 선진국에서 시행된 각종 정책들을 보자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였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인 우리나라에서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다자녀 가정이 더 많은 ‘다문화 가족’에 대한 관심도와 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도 그 중 하나일 것이며, 해마다 다양한 보육정책을 개발하여 영아부터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코자하는 정책들도 일련의 대처방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저조하다면 기저에 깔려있는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캐어내는 것이 선결되어야만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출산 비용이 부담되어서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젊은이들이 무엇이 꺼려, 부담스러워 출산을 기피하는 것인지를 심도 깊게 짚어봐야만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야한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부모의 경제적인 부담으로 와 닿는다면 결코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떻게 키워 줄 것인지 확실한 방안이 사회 저변에 신뢰 깊게 확산되어야만 저출산 문제를 차츰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출산력은 그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정책적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사회가 발전될 수록 가임여성의 결혼행태와 자녀에 대한 가치관은 출산력에 더욱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저출산(低出産)이 가져올 인구고령화, 노동력감소, 사회복지비용의 증대 등 사회ㆍ경제적 부작용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출산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저출산의 사회ㆍ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은 곧 무너져내리는 국가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우선 가시적인 실적만을 높이려는 정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만 할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수치에만 연연한 정책이 아닌 귀를 열고 발로 뛰어 우리 실정에 딱 맞는 정책이 어떠한 것인지를 시급히 개발하고 정착시켜야 하며 향후 삼십 여 년 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정말 성공적인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필자 소개 : 오명순 박사, 본지 칼럼니스트, 동신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대불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현재 사회복지법인 동민어린이집 원장으로 재직중이며, 대불대학교 겸임교수, 전남발전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한국타임즈 오명순 칼럼니스트 msoh05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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