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단상] 롱 테이크, 롱 쇼트 그리고 심리적 거리 두기

- 김예명 '관찰과 상상력' 대표 -
2014. 02.24(월) 15:03확대축소
[김예명 관찰과상상력 대표, 살림단상 칼럼니스트]
[김예명 '관찰과상상력' 대표, 살림단상 칼럼니스트] 최근에 두 가지 사진 전시회를 보았다. 박노해 전과 애니 레보비츠 전이다. 박노해는 시인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일명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이다. 98년 사면되어 옥살이에서 해방되었지만 이후 그는 이념이 사라진 시대에서 삶의 길을 잃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가 찾은 해법은 아시아 오지 여행이었고 약 15년 여의 여정은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된다.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 된 게 아니라 말했듯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가가 된 것은 아니었으나, 박노해의 사진은 기술적으로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관람자 시선에서 보건대 그의 사진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소통을 담고 있었다.


애니 레보비츠는 미국 대중예술지 수석 사진작가로 화려한 출발을 한 후 유명 대중 예술인, 운동선수, 기업가 및 작가와 정치가 등을 찍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성공한 상업 사진작가였던 그녀는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과 15년을 함께 하면서 사진 내용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를 테면 90년대 보스니아 사라예보 내전을 경험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 이번 사진전은 1990년에서부터 2005년까지 찍었던 사진들 중 상업 사진과 다큐 사진의 경계를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사진들은 인물을 강하게 부각하면서도 격정과 같은 과장은 보이지 않는다.


두 전시를 보고나니 자연스레 두 사진가를 비교해보게 되었다. 그들은 정치적 성향도 촬영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사진가 박노해는 피사체에 마음을 실어 풍경처럼 다가간다. '풍경처럼'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스쳐간다'는 뜻이다. 찍는 자로서 박노해는 침략의 피해로 인한 아시아 오지의 가난과 슬픔과 고통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자연도 사람도 풍경으로만 보인다. 그의 사진에 여타의 사진전에서 보다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는 이유는 그냥 스쳐 지나지는 못 하겠는 사진가의 한계에 대한 보완일 수도 있겠다. 이 점에서 박노해의 사진은 공간적으로 많은 걸 보여주려는 롱 쇼트 기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많은 이야기를 찍음으로써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인지도.


반면 애니 레보비츠는 비유하자면 시간적으로 오래 보여주는 롱 테이크 기법으로 보았다. 사진이라는 게 순간을 포착하여 정지시키는 특성을 갖는 것이지만, 그녀 사진의 강렬함은 관람자를 그 앞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정맥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용수의 다리, 소나무 껍질 같은 거칠고 깊은 주름, 형형한 눈빛, 무표정하거나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의 모델들.. 그런데 모델들이 있는 공간은 대부분 단순하다. 사진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그만큼 분명하다.


하지만 박노해든 애니 레보비츠든 그들의 작품은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이 있고 그 여운은 길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메시지에 어울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누구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사는 것이니 '사람 마음 다 똑같다'는 말은 하나의 원리가 될 수 있겠다.


결국 롱 테이크냐 롱 쇼트냐를 선택하는 밑바탕은 현실에 대한 적정한 '거리 두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략은 뜨거운 열정으로 품어야 하나 전술은 차가운 이성이어야 승리가 오듯 인생이라는 먼 길에는 롱 테이크와 롱 쇼트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 매 사 극적으로 휘몰아치기만 한다면 호흡만 가빠져서 가기 힘들다. 그런데 요즘 시절 하 수상타. 요사스럽게 수상타.


구체적 내용도 없이 누군가는 생뚱맞게 내란음모죄라는 타이틀로 12년 구형이 내려졌고, 조작이 확실한 유서 대필 사건이 18년 만에 무죄 판결로 일단락되는 듯 했는데 검찰은 항소를 했으며,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전원에 대한 해고 무효 판결이 내려졌으나 원직 복직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게다가 부산의 한 대학교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건물이 붕괴돼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도 '공부 못 해 그 학교 들어가 부모 가슴 아프게 했으니 잘 죽었다'느니 '내가 들어갈 자리가 생겼으니 잘 죽었다'느니 하는 파렴치한 댓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의와 양심이란 게 존재하는지조차 혼란스러운 이 와중에 러시아에선 국제 운동 경기가 펼쳐져 또 하나의 불쏘시개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기막히고 가슴 막힌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저 모든 현실에 '거리 두기'를 하자는 말만 곱씹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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