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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단상] 타인은 끝내 타인이 아니다

- 김예명 관찰과 상상력 대표 -
2013. 05.22(수) 00:36확대축소
[김예명 칼럼니스트, 관찰과 상상력 대표]
[김예명/관찰과 상상력 대표] '그'는 하루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한 예술가 커플을 도청한다. 웃음기 하나 없이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이 그의 무기다. 동독 최고의 비밀 경찰인 '그'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게 주 업무다.


드라이만은 서독의 한 잡지에 동독에서 자살 인구 통계를 내지 않는 게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를 고발한 기사를 썼다. 그로 인해 크리스타는 연행되어 조사 받고 문제의 그 기사를 쓴 타자기가 숨어 있는 장소를 실토한 후 풀려난다. 오랫동안 그들을 감시해온 '그'는 재빨리 그들의 집에 가서 타자기를 감추고, 크리스타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그 차림 그대로 뛰쳐나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자살이었다.


동독에서 자살 인구 통계를 내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정치적 탄압에 의한 자살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동독에서의 일이다.


동서독이 통일된 후 드라이만은 스승에게 생일 선물로 악보 하나를 받는데, 제목이 '착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 드라이만은 같은 제목의 소설을 출간하고 오랫동안 '그'가 자신을 비호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소설을 '그'에게 헌정한다고 쓴다. 서점에서 이 글을 본 비밀 경찰 '그'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며 책을 사갖고 나온다.


2007년에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주인공 남자 배우는 낯설었지만, 얼굴 근육을 꽉 다문 것 같은 그의 표정 연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영화를 본 지 6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되는 그 무표정이라니. 그래서 오히려 감동과 여운이 길었던 영화다.


'타인의 삶'이라는 제목이 무슨 멜로 같아서 이 영화를 보았으니 굳이 멜로 식으로 이 영화를 말하자면, '타인을 감시하던 비밀 경찰, 감시자를 사랑하다'쯤이 되겠다. '그'는 감정에 흔들림이 없을 최고로 유능한 경찰이었기에 반체제 위험 인물의 감시자 역할을 하기엔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이 감시를 받을 만큼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예술 활동을 하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뿐.


'그'가 감화 받은 것은 그런 '평범함'이었다. 하지만 평범함이 일상의 행복과 예술로 승화되려면 자유가 필요했다. '그'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하는 일의 무용함과 부조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삶을 긍정성 위에 세울 수 있다는 건 결국 우리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금 일깨워준다.


5월은 푸른 나무의 생명력과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다. 그러나 이 화사한 계절을 얼룩지게 한 위험한 일들도 많았다. 개성 공단 폐쇄나 대통령 방미 일정 때 일어났던 성추행 사건 그리고 통상 임금 해결 장담, 5. 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노래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 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들 심사를 참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을 바꾸면서 우려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격이랄까.


집단 광기에 사로잡혀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개인으로 불러내 일렬로 세워놓고 보면 이 속에서 고통을 겪고 크리스타와 같은 파국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런지 생각해본다. 크리스타의 자살은 개인적으로는 내 한 목숨 건지자고 애인을 배신한 행위요 집단적으로는 반정부 활동 인사들에 대한 배신 행위였으니 결국 수치심에 의한 선택이었을게다.


내가 바로 서자면 이렇듯 네가 온전해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너를 버려야했는지. 또한 그런 배신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시스템 속에 우리가 살고 있었는지.


각자 알아서 사는 것 같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 받고 산다. 좋은 영향은 당연히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니 타인은 끝내 타인이 아니라 나의 거울일 것이다. 나는 비밀 경찰이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더 활짝 꽃필 때가 올 거라고 믿어버린다. '그'는 타인의 삶에 감화 되어 비밀스러운 부자유의 삶을 빠져나왔고 그리하여 평범한 일상의 자유 속에서 타인들과 함께 살아갈 테니까.


[살림단상 글보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411
e-mail : munch-m@hanmail.net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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