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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단상] 국립현대미술관 정 관장이 미술계에 남긴 폐단
2014. 11.29(토) 08:12확대축소
[강행원 살림단상 칼럼니스트, 화가]
[강행원 살림단상 칼럼니스트, 화가]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의 월권은 우리사회의 리더 여성들의 아름다운 얼굴에 먹칠을 했다. 잔여임기를 3개월 남겨놓고 비리얼룩으로 자리를 마감한 그의 행보에 연민을 느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21세기의 오늘 이 시대의 정체성을 규명한다면 민주화, 인권, 기술혁명, 자본주의, 기타 등등 많다. 그러나 이것들을 함축할만한 대표적인 정의의 표현은 남녀평등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남녀 평등적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능히 남성이 못한 능력을 발휘하리라고 미술계는 기대하였다. 그러나 미술계가 기대했던 희망은 크게 어긋나고 말았다. 그것은 전대의 관장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월권의 상습적인 전횡을 정 관장은 자신의 고유권한처럼 자행하여 운영상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무능 때문이다.


이러한 파행운영은 그가 갖추고 있는 능력보다도 화려한 스펙으로 정치력에 의해 관장으로 발탁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는 스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스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시대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의 함축을 남녀평등으로 보았던 필자의 소견은 민주화가 곧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민주화는 평등무차별한 관계로부터 자유경쟁과 더불어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남용한 정 관장의 폐단은 역대 관장들 중에서 가장 페이퍼스펙이 화려했으므로 그의 인격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정 관장의 전횡은 평등사회의 역량을 여지없이 권력으로 짓밟는 부정행위가 국감을 통해서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상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면 "정 관장은 학예연구사 공채 당시 근대미술이론 분야에 지원한 자신의 제자 A씨가 서류전형 7위로 탈락했지만 관장의 지시로 인사담당자가 서류를 조작해 3위로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 관장은 면접위원이 아님에도 면접장에 들어가 자신의 제자 B씨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는 등 개입했다. 결국 A씨와 B씨는 각각 근대미술이론 분야와 동양화이론 분야의 면접에서 1등을 기록했고 이후 학예연구사에 최종 합격했다."


정 관장은 국감을 통해 알려진 이 같은 인사부정 말고도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에 초대된 작가들의 85%가 특정학교(서울대) 출신인 자신의 재직학교 중심의 편파적인 부정인선으로 축제장이 되어야 할 미술계를 비탄에 빠뜨린 바 있다. 이로 인해 한국미술인 전체의 울분과 퇴진하라는 항의의 질타가 있었다. 그러나 잘못을 시인한 것 외에는 아무 반성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정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면서 평등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학연을 비롯한 연고중심의 운영성향은 엘리트의식이 가져다 준 소아병적 행위와도 다름 아니었다.


결과는 명문을 더 빛내는 것이 아니라 더 욕되게 했다. 창작세계에서의 중요한 정신은 명문학교출신의 스펙을 붙인 엘리트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작가 개개인 자신의 창작성이 곧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그의 전횡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높이기 위해 설치된 미술은행(Art Bank)의 작품매입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의구심을 남겼다. 이는 정부가 미술대중화와 미술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를 도입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의뢰한 임시 운영과정에서 일어난 변칙 음모이다.


그것은 미술인과 외부전문가(미술평론가)로 하여금 심의위원을 배정하던 전례를 뒤집고 자체 학예사들만을 중심으로 구성한 비밀에 붙여진 월권이다. 이전에는 학예사들이 서류접수와 아울러 작품 심의에 공정성을 기하도록 조력하는 업무만을 분담했었다. 삼자가 함께 협력해도 공정성 확보가 쉽지 않았던 문제를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작품매입을 독단으로 비밀리에 처리했다면 어느 누가 그 투명성을 인정하겠는가. 학예사들이 심의에 배정되지 않았던 점은 청렴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3년여에 걸쳐 상습적으로 예산집행 내용과 심의에 관한 내용을 비공개 하는 등 전례가 없는 독선을 자행했다. 매입 작품 공개와 비 매입 작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비롯한 세부명세 공개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눈은 미술관의 학예사들 보다도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과 외부 평론가들의 눈이 월등하다는 것을 어떤 논리의 변으로도 감출수가 없다. 특히 미술작품을 선별하는 함정은 아프리카의 고대 미술이나 오늘의 현대미술이 우열이 있을 수 없다는데 있다. 그래서 학연 지연 등 연고 중심으로 매입해도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음을 악용한 사례라고 보여 진다.


물론 이러한 발상이 관장 독단의 운영논리만은 아닐 것이다. 직원들의 교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후문에는 '여왕벌'이라는 닉네임이 회자된 학예사와 뜻을 같이해온 '제이' 학예사의 밀력(蜜力)이라는 잡음이 있다. 여기에는 매입대상자들과 업무를 담당하는 학예사들과의 사전 커넥션도 없지 않았을 것이며, 동시에 관장도 함께 동화되어 고유권한처럼 집행 되었을 것임을 예감한다. 하지만 정 관장은 무슨 뒷 배경이 작용하고 있었기에 권력을 남용한 것인지? 아니면 순진한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다.


결국은 불명예스럽게도 임기 3개월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것으로 모든 비리를 떠 않고 가는 식의 마무리는 받아드릴 수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미술품 매입에 교사되고 있었던 금전적인 비리음모가 함께 매장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관장이 계속 바뀌어도 개선될 수 없을 것임으로 미술은행 운영 특별감사의 재요청이 절실하다. 우리가 여망했던 민주화의 토대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 또는 관료의 부정과 비리가 사회로부터 면책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지당한 법적 도덕적인 일이다.


특히 사회의 중추를 구성하는 지도급 인사나,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의 부정, 부패는 묵과할 수 없는 청산의 대상이자 개혁의 과제인 것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 및 도덕성의 함몰은 그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위기의 징후이기 때문에 이를 정부가 면밀히 감사하여 사법적으로 차단하는 분명한 징벌이 따라야 할 것이다. 선량한 응모자들이 무참한 꼴을 당하게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납득 할 것인가. 민주화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시절에는 정의의 정통성이 부정되는 길들여진 문화풍토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리의 패습이 당연한 힘의 논리로 인식되어 온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부끄럽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언처럼 발등을 찍힌 우리의 입장은 이 부끄러운 재현을 보는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청치에서는 인사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현 정부의 출범당시부터 굴절된 인사를 되 뇌이고 싶지는 않다. 논공행상이 가져온 과오는 마치 주머니에 넣어둔 송곳처럼 튀어나온 모순들을 생각해보면 최종 인사권자 자신도 실색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은인사를 비롯한 비선이나 사선인사를 넘어 지역안배를 고려한 탕평인사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스펙중심 보다는 자격이 갖추어진 전문인들 속에서 곧은 인물들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정치생명은 치자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주위의 한정된 입맛에 맞는 도움으로는 결코 국가 경영의 좋은 치적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교훈이이기도 하다. 탕평책을 주저하면 주저 할수록 이와 같은 과오는 더욱 커질 뿐이다. 대한민국을 부르는 부끄러운 첫 번째 별칭이 학벌공화국이다. 다시 말하면 종이(Paper)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뜻이다. 능력보다 종이가 우선인 스펙의 나라가 되어버린 허구의 별칭이 부끄럽다. 그 외에도 참사공화국, 또는 빨리빨리 공화국, 돈이면 다 해결되는 재벌공화국 등 정치권력이나 법위에 돈의 힘이 군림하는 금력이 곧 하늘인 나라이다.


이쯤 되면 부정부패가 왜, 무엇 때문에 기승을 부리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 페이퍼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난무하는 갖가지 병폐들이 오늘의 일그러진 종이의 나라 한국의 자화상이 된 탓이다. 미술계 역시 각종 공모전으로 얼킨 종이 위상을 만드는 일에 큰 공훈을 한 셈이다. 그 종이 상장의 배경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실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허다하다. 종이위상으로 오르고자하는 모든 지위는 마땅히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자리에서 이미 자신의 이 끝 앞에 정의가 오염된 종이에 불과한 문제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해서 편법으로 거머쥔 권력으로부터 그 너머에 있는 심증을 헤아리는 청렴한 지혜가 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통치자로부터 '법과 원칙'이라는 말을 귀에 익도록 들어왔다. 이 사회의 모든 대중들이 겪는 권력도 배경도 돈과 종이가 우선인 나라의 병폐문화를 법과 원칙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를 묻고 싶다. 이제 미술인들은 분노도 저항도 할 기력이 없을 만큼 빈곤에 빠져 있다. 통치자가 제시한 공약부터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빈곤에 빠진 예술인들을 향해 ‘문화융성위원회’라는 거창한 명칭만 구호로 나부낄 뿐 문화는 신음하고 있는데 그 효력은 언제쯤 발효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 당장 신음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법과 원칙이 공허할 뿐 정의가 강물 같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강줄기가 말라 비틀어져 슬픈 것이다. 비리음모가 농단되고 도사리는 기형으로부터 바로 서게 하는 사회가 당장 보고 싶다. 어느 구석이든지 칼자루 잡은 사람 마음이 곧 정의로 통하는 그런 자유가 더 이상 민주세상에서는 발붙일 수 없는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강행원의 다른글 보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513
e-mail : yoonsan47@hanmail.net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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