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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단상] 禁止를 禁止하라 (1) = 禁書

금지를 금지하라 (1) = 금서
2015. 04.20(월) 11:23확대축소
[오미아 박사/종교예술철학. 칼럼니스트]
[오미아 박사/종교예술철학. 칼럼니스트] 境界를 넘어 서는 일과 禁忌를 깨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


눈으로 보여 지는 것 너머의 본질을 드러내고, 장르간의 경계를 허무는 일들은 항상 새로워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만이 다다를 수 있는 境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 작품이 새로워지는 방법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 되는 일이 禁忌를 깨는 일이다.


금지된 것들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금지된 것들은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 보면 금지를 명하는 자를 부끄럽게 할 때가 대부분이다.

금지된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 작품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아이들이 읽는 동화로 알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는 시대를 풍자하는 성인물로서 당시에는 필자를 심프슨이라는 가명으로 숨겨서 출판해야만 했다.

저자인 조나단 스위프트(1667~1745)는 아일랜드 태생의 야당 정치가이고 성공회 사제였다.

그는 적대국인 영국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이 책을 썼고, 그 비유가 너무 지나쳐서 적국인 영국에서는 발행과 동시에 금서가 되었고 자국인 아일랜드에서도 계속되는 수정과 보완을 요구 받는 불편한 책이 되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는 진한 풍자 부분들이 제거되어서 아이들이 읽기 편한 거인국 소인국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 속뜻을 알고 보면 왠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걸리버여행기 중에 편집되어 드러나지 않는 구절들을 보면, 왕실 추밀원을 변기에, 상원의원을 거위 무리에, 군대를 전염병에, 대신을 얼간이에, 교회 신부를 중풍에, 귀족 위원회를 요강에, 궁중을 시궁창에 등등 너무 많고 신랄하여 이루 옮길 수도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걸리버여행기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글럽덥드립이라는 ‘마술의섬’편에서는 죽은 사람을 불러 청문회를 여는 장면이 나온다.


“몇 사람이 同性愛와 近親相姦으로 인해 명성과 재산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처와 딸을 賣淫 시켜서 직위와 재산을 얻었다고 고백하였다... 등등”


사용된 단어들을 보니 분명히 어린이에게 보여줄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은 원작과 다르게 전해져서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야기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그 시대를 살필 수 있는 고전 작품으로서 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금지된 작품이 시대를 넘어서 이어지는 것은 금지를 시킨 사람도 금지를 당한 사람도 아닌 금지를 목격하고도 선택한 독자의 몫인 것이다.


진시황의 焚書坑儒를 넘어서 四書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조선시대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읽어야 했던 天主實義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읽혀지지 않아서 絶版이 되는 현실도 시대의 선택인 것이다.


프로타고라스가 지은 ‘제신론(諸神論)이라는 책은 독신죄(瀆神罪)가 적용되어서 禁書가 되었고, 코페르니쿠스가 地動說을 주장하며 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신을 모독한 죄로 금서가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신의 이름을 빌리고는 있지만 성직이라는 특권층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특권층의 권위가 무너지고 난 뒤에는 모두가 알 수 있는 상식이 된다.

종교적 권위주의를 넘어서서 근대라고 불리는 시대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금서가 생겨났고 그 금기를 깨면서 개몽이라 불리우는 혁명이 이루어졌다.


1229년 발렌시아 공의회(The Council of Valencia)에서는 성경을 司祭 이외에는 읽지 못하게 함으로서 성직자들의 권위를 보장해주었다.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교회와 성직자들이 이 역할을 악용하여 자신의 영달만을 위할 때 가장 큰 무기가 된 것은 신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성경이었다.

자신들이 팔고 싶은 면죄부가 성경에 씌어져 있다고 말할 때 스스로 성서를 뒤져서 거짓임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얼마나 쉽고 간단한 혁명인가.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성서를 번역하는 일은 시대를 가르는 혁명적인 일이 되었다.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 성서‘ 존 칼뱅이 번역한 ’프랑스어 성서’등은 모두 금서로 금지 된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뿐 아니라 성가도 만인의 소유물로 돌려주었다.

이전 예배에서는 성가대의 전문가들만이 그레고리안 찬트의 영광송(Doxology)을 번갈아 부르고 사제들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회중들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일반 회중들도 성가를 부를 수 있도록 예배 방식을 바꾸었다.

그는 ‘네 주는 나의 성이요’ 등 많은 성가를 작곡하고 작사하였고, 이러한 성가는 ‘코랄’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 성가곡들도 금지 되었다.

이후 진보적 성향의 책들은 거의 빠짐없이 금서가 된다.

존 칼뱅의 ‘기독교 강요’, 츠빙글리의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 등 지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칼보다 강한 위협적이고 두려운 무기였다.

일반인들 사이에 퍼지는 성서와 찬송가의 위력은 교회 울타리 밖 어디서나 신을 만날 수 있다는 발칙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신을 대변하는 사제의 말도, 번잡한 교회도 필요 없어져서 암흑 같은 시대를 벗어나 스스로 해방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개몽과 해방이라는 시대적 화두는 낭만주의와 함께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세상을 열어 내었다.

암흑의 시대가 지나자 전형적인 형식을 깨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 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봇물 터지듯 등장 한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판 되었을 때 독일의 지역 신문의 서평은 이렇다.


“이런 종류의 책은 시민을 보호 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든 정부에서 금지해야한다”


실제로 당시 자살 신드룸이 일었고, 이로 인해 이듬해 1월 라이프치히 법정은 작센 지방에 이 소설의 인쇄, 판매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막을수록 책의 가치는 올라갔다.

자살을 조장하는 내용의 불온한 책이 시대를 넘어 고전을 될 줄은 당시의 어느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운 문체의 접한 독자들은 감성적인 연애 소설을 넘어 베르테르의 편지를 자신이 직접 받아들 듯 베르테르의 친구가 되었고, 결국에는 그의 불행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따라서 금지에 대한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이어가 독일 최고의 소설로 자리매김 한다.


배운자, 가진자만이 쓰고 해독 할 수 있는 문체는 권력이다.

차별 없이 공감 할 수 있는 문체는 불평등한 권력을 나누어 주는 일과 같다.

문체를 민중에게 돌려준 빅토르 위고, 루쉰,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이 혁명을 불러 온 것도 우연은 아니다.


개혁 군주라 여겨지는 조선의 왕 정조도 새로운 문체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았다.

문체를 바꾸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현실을 바꾸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군주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일까.

불편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문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정조는 ‘文體反正’을 실시한다.

문체반정의 시작은 청나라의 유명한 연애소설 ‘평산냉연’을 예문관에서 숙직하던 김조순과 이상황이 읽다가 정조에게 발각된 것에서 기인한다.

이 책은 평,산,냉,연이라는 네명의 꽃미남과 꽃미녀들이 펼치는 일종의 로멘스 소설이다.

배웠다는 관리들이 로멘스 소설이나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분개한 군주는 고전에서 쓰이는 딱딱하고 반듯한 글로 된 문장 이외의 자유로운 글쓰기를 금하도록 명한다.

글을 쓰는 이유가 오직 ‘道’ 즉 옳고 바른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여기는 한, 가볍기 그지없는 戀情은 감추는 것이 道理다.

그러나 정조의 바램과는 달리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 불량 선비들이 속출하여 반성문이 쌓여 갔고, 급기야는 자신의 문체를 지키기 위해 왕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옥 같은 문제적 선비도 등장하였다.

힘으로 막을수록 대세는 거세어지는 법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온한 생각들은 감출수록 드러나고 피할수록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후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고 묘사한 이유로 금지된 플로베르의 ‘보바르 부인’, 열여섯살 소년이 우연히 만난 창녀에게 동정을 읽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된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간통을 노골적으로 부추킨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 스탕달의 ‘적과 흑’ 등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음란하다는 이유로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읽혀졌다.

금지된 이유가 금지를 막게 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이제는 별 것 아닌 음탕함에 지나지 않지만 금서로 견뎌온 세월 동안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큼 불온한 사건이었다.


금서의 역사는 단순히 파기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에 대항해 언어가 거둔 승리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알면서도 꺼리는 이야기들을 들추어내서 세상에 과감히 던지는 일은 시대를 바꾸고 그 주인공을 바꾸는 일이다.

불온한 생각과 호기심은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이제는 간통도 법으로 금지 할 수 없고, 동성애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낭만주의가 제기한 문제들이 진부해 져서 욕망에 대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권력자들의 부패는 일상처럼 익숙하고 대항할 가치도 없는 일처럼 경박하다.

과학도 예술도 한 통속이 되어서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다.

무엇이 불편할 진실일까.


차라리 첨단 과학의 세상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직설적으로 자신이 윤리적인 인간임을 자부 하는 것이 더 진보적이지 않을까.


모든 것이 허용 된 세상에서 금지 할 것을 찾아 나서기도 쉽지 않다.

禁忌도 그리워지는 시대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이 예술이다.


[원글바로가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655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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