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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나눔과 배려(3회) - 올 설엔 오병이어(五餠二魚) 배려가 넘쳐나야
2017. 01.21(토) 06:30확대축소
[한국타임즈 최창수 수도권총괄본부장]
[한국타임즈 최창수 수도권총괄본부장] 성서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 예수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장정만 오천 명이라 적혀 있다)을 배불리 먹였다는 유명한 예수님의 기적, 아니 행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화가 과학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며 논란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화가 과학적으로 가능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리 먹어도 음식이 다시 만들어지는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콩알만큼씩 뜯어서 오천 명이 나누어 먹은 것일까? 필자는 이 사건을 '어떻게 먹었는가?'에 치중한 나머지 기적 혹은 과학적 오류라는 사무적 판단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주고 먹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여기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모자라는 것이라도 함께 나눌 때 모두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눔을 실천에 옮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려하는 마음이다. '콩 한 톨도 나누어 먹는다.'는 우리 속담에도 이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 있지 않은가? 이 일화는 이른 바 '나눔'에 대한 우리의 알량하고 가식적인 생각을 단숨에 부숴 버린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나눔'을 나와 내 식구가 먹고 남는 것으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적선이나 자선으로 생각한다. 그 생각은 다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선 부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환원된다. 물론 적선이나 자선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가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한 냉혹한 현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더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가 아니더라도 적선이나 자선이 아닌 진정한 나눔을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배려하는 마음이다. 배려는 상대방의 모든 생각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면서, 나보다 처지가 빈궁한 이웃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가지 덕목이 있다. 동양의 인의(仁義)를 비롯해 서양의 기독 신앙에 나오는 사랑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덕목의 근간에 배려가 있으며, 곧 배려는 이들 덕목 실현의 뿌리인 것이다.

배려에 뿌리를 두지 않은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만 그친다. 연민에만 그칠 때 나눔은 사람을 '불쌍한 사람'과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역할을 나눈다. 이때의 나눔 행위는 이 두 역할의 배우들이 등장해 벌이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쇼에 불과하다. 이때에 '불쌍한 사람'은 손가락질 받는 조연 역할을, '훌륭한 사람'은 주위의 칭송을 듬뿍 받는 주연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쇼에 참여함으로써 '불쌍한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훌륭한 사람'의 안락한 삶을 연관시키지 못한다. 이렇게 해 부자들은 자기 재산의 극히 일부를 내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이들의 행위는 미화법으로 치장된다.

반면에 배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 위에 그 고통스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향한 정당한 분노를 더한다. 어떤 사람은 종일 힘들게 일하고도 먹고살기조차 힘든 현실을 허락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개성에 맞춰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능력을 준다. 이러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팽배한 세상을 적선이나 자선이 없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배려하는 나눔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이며 행위이다. 자연도, 자원도, 돈도, 식량도, 집도, 땅도 누구에게도 사적으로 소유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배려와 나눔은 세상의 그 어떤 변혁 운동보다 더 근본주의적이며 급진적인 운동이 되는 셈이다. '오병이어'의 일화는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장엄한 사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배려와 무관한 나눔의 얼굴은 어떻게 그려질까? 보기만 해도 애절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실은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내밀며 "이 사람이 당신에게 꼬박꼬박 감사의 편지를 보낼 겁니다. 이 사람은 당신을 통해서 삶의 안정을 되찾고 행복해질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눔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이들의 얼굴, 곧 '불쌍한 사람'과 '훌륭한 사람'의 역할 분담을 이행하고 있는 수많은 만남의 얼굴에서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이 보일까? 만일 그렇게 보인다면 그 얼굴에 또 하나의 얼굴, 곧 얼음보다 더 차갑고 맹수보다 더 사나운 얼굴을 그려주는 게 낫겠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곧 배려심이 살아 숨 쉬는 사회.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더 성취하기 어려운 사회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손톱만큼 일지언정 배려의 나눔이 행해지고 작지만 아름다운 모습들이 인간에 자주 회자(膾炙)될 때에 신뢰, 존중, 그리고 배려가 움트는 사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물론 배려의 나눔이 삭막하고 소외된 사회를 인정이 넘치는 사회로 탈바꿈해줄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가뭄에 내라는 단비가 아니어도 졸다. 햇볕이 내리 쬐는 날에 잠깐 내렸다 그치는 여우비이라도 좋다. 적선과 자선이 넘치는 많음보다 적더라도 진정한 배려의 나눔이 더 아름다울 것이니 말이다.

며칠 후면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맞이하는 설이다. 올 설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온 산하에 가득 넘치는 그런 출발이면 좋겠다.

한국타임즈 최창수 기자 asss7777@hanmail.net        한국타임즈 최창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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