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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화재단 人文學堂 '살림태학'이 지향해 나아가야 할 使命이란?

2018년 6월 19일,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人文學堂 '살림태학당' 개소
2018. 06.21(목) 23:55확대축소
[만암 이 황 선생]
[만암 이 황, 살림태학당 교수, 한국타임즈 논설위원] 우리 사회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풍요 속의 빈곤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그것도 대단히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풍요이지만, 그 물질적 풍요 속에 극도로 황폐화해 가는 정신적 빈곤, 아니 이는 정확히 말해서 정신적 장애 수준의 공황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 갈증을 해소해 보려는 갈망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대학에서는 人文學 관련 學科가 사라지고 있다. 왜냐면 잘 알다시피 就職이 안 되니까 그렇다.

이것을 孔子는 2500년 전에 지적했다. 『論語 헌문편』에서 孔子는 爲己之學과 爲人之學으로 나눠서 말했다. 爲己之學이란 자신의 인격수양을 위한 공부를 말하고, 爲人之學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말한 것이다. 孔子는 그때도 세상에 爲人之學만 팽배한다고 우려했다. 그런 현상이 오늘날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직을 위한 도구를 생산하는 기관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이 '人文'이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또한 적어도 2500년 전 孔子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論語·雍也편』에 이런 말이 있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實質이 文彩를 능가하면 투박하고 거칠며, 文彩가 實質을 능가하면 形式에 치우친 판박이가 된다. 그러니 文과 質이 調和를 이루면 그런 연후에 君子가 되는 것이다. 대충 이런 뜻이다.

文이란 文彩, 즉 겉으로 드러나는 品格 같은 것으로, 이것이 지나치면 史(호사스럽다는 뜻)라 하여 교양적이고 세련되기는 하나 화려하거나 형식에 치우치는 것이 되고, 質은 질박하여 이것이 지나치면 野라하여 야성이 있고 개성이 있는 것으로 野人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 둘이 調和를 이뤄야 君子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文'이란 글월文으로써의 文이라는 글字를 뜻 한 것이 아니고(지금은 그렇게 이해하지만), '文'이라는 글자의 시원은 문체 형상 모양에서 온 글자이다. 여러 가지의 문양에서 취한다는 뜻에서 文이라는 글자가 나온 것이다.

또 '野'란 '野人'을 뜻하는데, '野人'이란 말은 이미 周나라 때 있었고, 제도권 밖에 있는 기인이사를 말한 것이다. 특히 '在野人士'라 칭해지는 人士도 이게 멀리 3,000년 전, 周나라 때부터 있었던 單語이다. 따라서 이 '人文'이란 말의 연원은 孔子에게서 비롯한 말이다.

그럼 '살림'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살림'이란 '죽임'의 반대개념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단순히 그런 차원만이 아니다. 『周易』에 이런 말이 있다.
"生生之謂道", 낳고 낳는 것을 道라고 한다. 또 말을 좀 바꾸면 이렇다. 자라고 자라는 것, 기르고 기르는 것, 살고 사는 것, 살리고 살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된다. 이를 한 발짝 더 나아가서 "一陰一陽之謂易"이라 하여,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는 것을 易이라 한다.

생명의 영속성과 우주의 끝없는 변화의 원리에서 지금 이 순간, 찰라지간의 변화의 원리를 뜻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東洋에서만 얘기하는 陰陽의 상호 대립적이면서 보완적 순환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陰과 陽이라는 것은 서로 대립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陰과 陽은 상대적이며 동시적이다. 陰陽의 경우, 짝하는 상대는 상반되고 대립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둘은 상대를 품고 있다. 陰과 陽은 상반하면서 상호 의지하며, 상호 배척하면서 상호 포용한다. 상호 부딪치면서 상호 끌어안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陰陽이란 상호 대립이 아니라 陰이 極하면 陽이 되고, 陽이 極하면 陰이 된다는 뜻이다. 또 陽은 陰을 指向하고, 陰은 陽을 指向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얼굴에 코와 귀는 陽인데 陰을 지향하니까 靜的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입과 눈은 陰인데 陽을 지양하니까 끝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또 있다. 남자는 陽인데 陰을 지양하니까 튀어나온 곳이 없다. 여자는 陰인데 陽을 지양하니까 가슴과 엉덩이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도(道)가 한 번은 陰하고 한 번은 陽하면서 생생지위도(生生之謂道)의 생명활동을 하면서 생성과 변화를 거듭한다. 그러니까 음양운동은 우주와 만물이 행하는 변화의 생명활동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따로 개별적으로 독립하여 모순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적이고 유기체적으로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살림'이며 '自然'인 것이다.

自然이란 道家에서는 天道라고도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정확히는 '道'란 天地가 생기기 이전의 '道'이다. 그래서 老子는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라 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한 것이다. 이 자연은 모든 것의 상위에 자리하고 있고, 우리 잘난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임을 절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自然이란, 하나는 人工이니, 加工이라는 의미에 상대되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으로 기독교의 피조물에 상대되는 의미의 '造物者'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創造者'의 개념을 뜻한다. 즉 萬物을 낳고 기른다는 뜻이다. 이것이 살림이다. 이 살림정신 위에 文化라는 것을 담는 것이 머리에 털 난 인간의 몫이고 사명이다. 그렇다면 이 살림을 어떻게 인문학으로 실현할 것인가?

그럼 '왜 人文이고 살림'인가? '어떤 人文이고 살림'인가?

자신의 인격수양을 위한 학문으로서 왜 爲己之學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憂患'에 있다. 즉 東洋哲學에서는 '憂患意識'이라고 한다.

어떤 철학자들은 인류의 사색과 성찰이 종교에서 철학으로, 다시 과학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맞기도 하다. 오늘날 진화생물학이니, 유전학, 양자물리학의 발전은 종교와 철학을 하위개념으로 전락시키는 지경에 이르러, 철학이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우환에서 근원한다고 하면 좀 의아해 할 것이다. 인간을 고뇌하게 하거나,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 그 분야에 대한 연구는 잘 이뤄지지 않으니까. 이 모두를 동양의 사유에서는 '우환'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말로 풀자면 '근심 걱정'이 되겠다. 자신과 이웃, 국가와 백성을 위해 나의 행동이 올바른 결정이 될 수 있을 만큼 공부가 되어 있는가?,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인가?. 그 결정이 때에 합당한 것인가? 를 근심 걱정하는 것에서 동양철학은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道德修養論'이라고도 하지만. 물론 오늘날 중국의 유명한 동양철학자들은 憂患 보다 상위개념으로 情思想, 즉 뜻 情을 闡明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설하고,

憂患을 대표하는 經典이 『周易』이라는 책이다. 그래서 『周易』을 '群經之首' 즉 '모든 經典의 머릿경'이라고 한다. 기독교나 불교에도 핵심은 憂患이다. 천당이나 극락을 갈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근심 걱정의 憂患에서 구원이라는 내세를 담보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東洋哲學에서는 내세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해 만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憂患이 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 지금 여기 湖南으로 한정해서 논의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湖南의 유학전통이 바로 철저하고, 확실하게 '憂患意識'에서 발현된 節義精神인 '義鄕精神'이다. 다른 말로 儒學에서는 '道學'이라고 한다. 당나라 때 佛道, 즉 佛敎에 대응해서 韓愈에 의해 주창된 孔孟思想을 잇는 '道統'에 닿아 있지만, 憂患意識에서 발현된 道學傳統이 湖南儒學의 精神인 節義精神이다.

朝鮮 500년의 정치체제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권력과 지식을 양반이라는 한 집단이 공유한 나라이다. 어느 나라고 권력집단과 지식인 집단이 나뉘어서 상호 보완 견제 기능을 하면서 유지되었는데, 朝鮮은 兩班이라는 권력집단이 동시에 지식까지 독점하는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가체제였다. 이런 속에서 湖南과 비호남권의 지식집단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서 이 땅에서 비호남권의 양반계급, 즉 지식집단은 국가의 안녕과 자신과 가문이 동일체 개념으로 발전하는 경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湖南의 지식인은 자신과 가문의 안녕과 명예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나라걱정이라는 憂患意識에서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리는 道學傳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 이 시대, 이 지역, 즉 湖南에서의 人文學의 한 축은 義鄕으로서의 道學傳統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럼 이 義鄕이란 무엇인가? 湖南이라는 특성은 하나는 유배지로서의 지역적 특성, 둘은 좌천지역으로서의 특성, 셋은 낙향한 선비들의 안식처였다. 이미 유배를 당했다는 것은 근심 걱정, 즉 憂患에 대한 몸부림의 결과이다. 임금에 대한 걱정, 나라에 대한 걱정, 결과적으로는 백성 인민에 대한 걱정으로 살다가 부당한 권력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런 치열한 우환의식을 안고 살다가 그나마 국가적 외환의 근심 걱정이 없을 때는 문화예술로 승화되어서 문화 전통을 이었고, 그래서 예향 전통을 이었고, 국가가 외세의 위난에 처하여 외환의 근심 걱정에 이르면 의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 의향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것을 유학에서는 도학전통이라 한다. 그것을 살리고 계승하는 도학전통의 계승, 의향의 정신계승이 살림문화재단이 지향해 나아가야 할 人文學堂의 使命이라 생각한다.

한국타임즈 이 황 논설위원 yh7700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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