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6.30(목) 23:04 자유게시판   알림란   기사투고   기사제보

[살림단상] 정치행위에 나선 전국승려대회

닭 벼슬보다 못한 감투를 지키려는 스님들
2022. 02.02(수) 18:15확대축소
[강행원 한국타임즈ㆍ살림단상 논설위원, 화가/동양미학]
[강행원 한국타임즈/살림단상 논설위원, 화가/동양미학] 음력 새해를 맞아 진정한 불가의 정신인 사견을 파괴해서 정법을 드러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대학교단의 최고 지성들이 새날을 위해 저문 해의 마무리로 뽑아 올린 도둑을 잡는 자가 도둑과 한패가 된 묘서동처(猫鼠同處)라는 사자성어를 잠시 화두로 삼는다. 숨고르기를 해 보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다.

붓다의 가르침을 신앙하는 같은 교도입장에서 불가의 그릇된 행을 지탄해야 하는 아픔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지형의 변화된 시공이 과거와는 다를지라도 불교 본연의 진정한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겉모양만 갖춘 허수들의 놀이터에 불과하다는 점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두의 답은 조계종단의 기득권 카르텔이 내세운 (彿)부처불자 불교가 (不)아니불자 불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아픔이다.

어찌해서 조계종단은 꺼져가는 한국불교를 이끌 정신적인 대 선장이 없는지 현실의 미래가 암담하다. 누가 이 진흙탕 시국의 사견을 선동했는지 봉이 김선달이 조계종단의 봉창을 뚫는 요란한 파장이 전국을 강타하였다. 얼마나 나락으로 더 떨어져야 멈추게 될지? 어처구니가 없으니 맷돌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격이다.

사태의 본질은 지난해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문화재청 국정 감사에서 발언한 절집에서 걷두어들인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해당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했다. 이 말 한마디를 가지고 조계종단은 해묵은 발언을 꺼내 응징한답시고 전국사찰에 정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강력한 코스프레를 서슴치 않았다.

칠흑보다 무명한 속행들도 살펴 참을 수 있는 일을 하물며 승단의 지도자들이 청정도량을 오염시킨 망동을 보게 된, 대다수 국민들의 찌푸린 눈살은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 명분의 문제는 정청래 의원의 발언이 있기 수년전부터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이었다. 그 연유로 문화재청 지원 조치도 마련 된 것이다.

하지만 정의원의 사과에 대한 늑장이 없지 않았지만 대선정국을 앞둔 정치일선에선 그 늑장의 몇 곱으로 본인과 당대표 불자의원들의 108배 등의 사과가 있었음에도 사과를 무시한 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제일 승단의 자비도량 아량이 어디까지인지, 기득권의 응징이 시정잡배들을 무색하게 했다.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성자의 진정한 가르침에 대한 지도원리는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에 있다는 신앙의 가치를 짓밟아버린 것이다.

붓다께서도 춘다의 공양을 받고 독성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대장장이의 아들인 가난한 춘다가 올린공양의 독성을 알고도 거친 음식을 흔쾌히 드셨다. 물론 그 음식은 대중들께 올리지 말고 땅에 묻으라고 하였다. 눈치를 알게 된 제자들의 질타가 염려되어 그에 대한 열반공덕을 치하하여 오히려 원성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또한 예수께서도 ‘해골의 고장’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형틀에 박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남긴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나이다.” 라고 기도하였음을 볼 때, 종교의 기득권은 교도들의 집합숫자로 과시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큰 힘은 자비와 사랑으로의 용서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종교의 위상은 모양만 갖추었다고 신앙으로 숭앙되지 않는다. 사문의 사명이 중생의 행복을 담보한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붓다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나야 순수한 자비와 보살행이 스스럼없게 된다는 조사들의 당부다. 이와 같은 견해에 비춰볼 때, 조계종 승려집단은 오욕의 감투에 사로잡힌 앙갚음을 동안거 결제중에 한사코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했다.

놀라운 것은 한국제일의 봉암선원 수좌들까지 동안거 정진 중에 승려대회를 위해 산문을 이탈 했다. 그나마 마지막 남은 전통이 무너졌다는 것은 어의가 없는 변괴였다. 안거란 수행자들이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통적인 평소 정진의 가행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부모상을 당해도 정진을 멈추고 산문을 떠나지 않겠다는 철저한 수행결행기간이다.

하물며, 이 같은 엄중한 정진기간에 선승들이 전국승려대회를 참여했다는 것은 승단의 정신적인 참 가치에 대한 본분을 말살한 속물적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승려대회의 시위는 국민의 이목이 들끓었다. SNS에 나타난 효과는 승려집단에 퍼붓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들이 넘쳐 났다. 물론 그 속에는 불교인도 많이 포함돼 있을 것이지만, 특히 2030세대들에게 굴욕을 면치 못하게 된 점은 닭 벼슬 보다 못한 감투를 승단을 좌지우지하는 자에게 명줄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2500여명이 참여한 자신들끼리도 모임의 찬반의사를 물은바 65%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명진스님은 노골적으로 그 사견의 주동자를 자승스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는 조계종단이 자승교라고 할 만큼 소문이 무성해서 명성이 드높은 분이다.

그는 일찍이 고 성철 큰 스님의 법어를 이용하여 생수판매 상표를 ‘산은 산이요’ 물은 감(甘)이로다. 를 출시하여 삼보재원의 복지기금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 세웠다. 그로부터 전국사찰에서 판매된 생수 수익에 얽힌 다툼도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했다. 시공은 다르지만 같은 물장수 였다는 자존감의 충돌이 기득권으로 발화된 나비효과 였을지도? 전국 사찰을 현수막으로 뒤덮어 얼룩진 자리에 전국승려대회 그 정치행위의 파장은 결국 불집(火宅)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빌미로 현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범불교도 대회’를 26-27일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시청광장에서 감행하겠다는 선포다. 교세가 곤두박질을 해도 막무가내인 그들의 사견과 맞서 현정(顯正)을 요구하는 스님은 오직 명진스님 한 분 뿐이다. 외롭지만 찬탄의 박수갈채는 끝없는 국민적인 관심사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난국은 기득권과의 전쟁이다. 결국 이번 조계종 사태의 삿된 견해의 교세 몰락은 수뇌의 욕망을 위한 정치행위였다. 다시 말하면 대선운동에 참여 목적이었다. 돌아보면 비록 MB는 역사의 뒤안길로 몰락했지만, 그와 손잡고 얻어낸 혜택의 힘을 통해 지금껏 권력으로 누리던 향수가 불러온 탐,진,치 삼독심이 가린 무명의 소치이다.

이번 대선의 묘서동처(猫鼠同處) 했던 무속정치에 뛰어든 것이니 이쯤 되면 붓다의 교설이 혼돈불매 한 지경에 놓인 셈이다. 하지만 역대 조사들이 남긴 초심 학인문엔 “(百年貪物一朝塵 / 三日修心千載寶=백년 탐 한 재물이 하루아침 티끌이네/삼일 닦은 마음이 일천 재물의 보배려니.)” 라는 댓구의 주련이 사찰 곳곳에 장식하고 있다. 대련의 뜻이 사치스러운 불행한 과보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실천하지 않는 다면 수행자에게는 거짓을 사치로 삼는 행위일 뿐, 교도들에겐 패악이며 재앙이다. 인류에의 존경을 받아야할 가장 이상적인 부처님 법이 그 제자들인 일개 승단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고 있다. 세속 물에 찌든 마음을 정화하고 반야(般若)의 도를 얻기 위한 출가사문(沙門)이 도철(饕餮)의 마음을 배우기라면 차라리 노골적인 날강도가 더 수승하지 않을까 한다.

그들에겐 도(道) 닦는 일이 강도(强盜)나 수도(修道)가 발음상으로 같은 ‘도’인데 비생산적인 수도보다는 억지로 빼앗는 강도가 생산적어서 차라리 도철이 되는 길이 간섭을 넘어선 길일지도? 도의 눈으로 보면 종단이 썪은 것은 분명하지만 숲속에 썩은 큰 나무 몇 그루를 보고 그 숲이 모두 썩었다고 말 하는 것은 물론 어폐다.

하지만 그 숲을 대표하는 나무들이 무더기로 함께 썩어 있다면, 그 숲은 보잘 것 없는 잡목으로 얽인 쓸모없는 숲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복구가 불가능한 지경에 놓여있는 데도 불교단체들은 더 이상 자포자기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코로나19의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어서 조용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설마 서두에서 말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배격하고 도둑들과 손을 잡는 승가집단의 묘서동처(猫鼠同處)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조계종단을 버리고 감히 거사림 종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그 시작은 참여불교 재가연대가 초석을 다졌던 ‘우리함께빌딩’에 본산을 두고 인재풀이 넘쳐난 재가자들의 뜻을 모은다면 중국 못지않게 가능하다고 본다. 4차산업의 싸이언스리언 시대에 걸 맞는 붓다의 진정한 표교에 NGO단체들이 사명을 가지고 앞장서기를 발원한다.

2022년 2월 2일 불기2566년 음1월 2일 윤산우거에서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이모티콘
제 목
내 용
살림단상 주요기사
[살림단상] 정치행위에 나선 전국승려대회[살림단상] 내년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시골농부 '최병…
[살림단상] 내년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시골농부 '최병…[살림단상] 내년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시골농부 '최병…
[살림단상] 제주에서 만난 작가 박재준 일러스트레이터…[살림단상] 코로나의 위기, 과연 나는 바뀐 세상에 적…
[살림단상] 살림문화재단, '고려인 문학과의 만남' 행…[살림단상/종교칼럼] 한국종교연합평화포럼에 부쳐 "분…
[조사] 故 만암 이황 친구를 보내며... 광주 살림문화재단 문학창작집필공간 입주작가 모집 공…
최신 포토뉴스

광주 중앙공…

누리호 검증…

"대학 총장…

구례군의회…

[이슈기업 …

인기기사 최신기사
인사말 | 조직도 | 회원약관 | 개인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공지사항 | 제휴문의 | 광고문의 | 기사제보

Copyright ⓒ 제호 : 한국타임즈 등록연월일 : 2009. 9. 15. 등록번호 : 광주 아 00039, 광주 다 00238 | 대표이사/발행인 겸 편집인 : 김호성 메일:hktimes@hanmail.net

주식회사 청남 : (서울본부) 서울시 서대문구 서소문로 27. 202호(충정로 3가 충정리시온). (본사)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로 124. 케이원오피스타운 (7층 713호) 사업자등록번호 : 411-05-82468. 410-86-54027통신판매업신고2012-3600084-30-2-00179 청소년보호책임자 김호성 제보 및 문의 전화 : 062-382-7300(代) (서울) 02-365-0516 팩스 : 062-382-7310 The Hankooktimes [인터넷신문 및 일반주간신문] 이 사이트에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 허가없이 기사와 사진의 무단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