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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고려인 문화예술의 찬란한 횃불 '고려극장'에 대하여…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

첫 번째 이야기 : 민족극장의 출발과 연극 '춘향전'
2022. 07.15(금) 15:00확대축소
[연극 「춘향전」에서 춘향모(월매) 역을 맡은 최봉도 배우. 최봉도는 1927년 최초의 고려인영화 「도적」에 출연해 주연배우로 활약한 바 있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다. (사진=1955년 카자흐스탄 우스또베)]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 지난 달 광주고려인마을 중심에 위치한 월곡고려인문화관이 고려극장 창립 90주년 특별전을 개최하자 관람객들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계 최초의 우리말 전문연극극장이 세워졌다. 이 극장은 창단 이래 지금까지 민족문화의 횃불을 높이 들고 줄기차게 고려인 공동체에 축제 한마당을 펼치며 기쁨과 활력을 선사해왔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극장'이 바로 그것으로, 이 극장은 더 말이 필요 없는 고려인 문화예술의 상징이다.

무엇보다도 이 극장은 고려인 문화예술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1920~1930년대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현하여 연해주 고려인들을 수준 높은 시민사회로 견인해주었던 '선봉' 신문이나 '고려사범대학교' 같은 다른 민족문화예술기관들과 달리, 강제이주라는 가혹한 역사적 시련기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소련 전역에 흩어진 고려인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걸출한 입담과 흥겨운 가무로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줌으로써 어려운 시기에 심리치료사의 역할까지 감당했다.

'고려극장'은 1932년 9월 9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단되었다. 창단 사흘 전과 하루 전에 '선봉' 신문에 난 극장 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의욕에 불타는 25살 미만의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는 빈 창고의 구멍 난 벽을 석탄재로 메우고 집에서 가져온 옷가지와 가재도구로 분장을 하고 무대장치를 만들어 연극을 개시함으로써 비로소 한민족 최초의 연극 역사가 자랑스러운 첫발을 내디뎠음을 선포했다.

이 청년들은 러시아의 선진 무대예술을 독학으로 배우고 익히며, 각본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면서 불모지를 하나하나 개척해나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1935년에 봄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2~3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전문성과 짜임새를 갖춘 연극 '동북선'이 1935년 5월 11일에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이에 열광했다.

연이어 '춘향전', '장한몽', '올림피크', '심청전' 등이 무대에 오르면서 고려인 공연예술은 연해주 일대를 축제와 회합 한마당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1935년 9월 6일에 초연된 연극 '춘향전'은 이 극장을 전문연극극장으로 도약시키고 젊은 연극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안겨준 분기점이 되었다.

당시 배우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춘향전'에 나오는 말씨나 판소리, 양반의 몸놀림 같은 것들은 수준 높은 외국의 고전과 같아서 배우기가 어렵고 까다로워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들이 이를 성공적으로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극장 단원들은 연극 '춘향전'을 '춘향전'답게 만들고자 신문광고를 통해 최삼련 같은 창극 전문가를 찾아내거나 블라디보스토크 한간에 사는 판소리를 할 줄 아는 노인들을 찾아가 피나는 훈련을 받고 무대에 올라 그동안 배운 실력을 관객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또 원동극장관리국에서도 고려인들이 민족의 고전 작품을 흠결 없이 무대에 올려 관객을 매료시킨 점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연극 '춘향전'은 고려인 가요보급의 역사에도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춘향전'이 공연된 후 자연스럽게 무대음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우리말 가요가 꾸준히 창작·보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춘향전' 이후의 연극에는 극장 음악가들이 만든 무대음악이 반드시 극 중에서 불렸고, 그 가요들은 관객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오랫동안 고려인 구전가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 최초의 모국어 전문연극극장의 창립자들은 민족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불모지에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고 극장창단 3년 후 첫 선을 보인 연극 '춘향전'을 계기로 전문성을 갖춘 배우로 성장하여 두고두고 후배 연극인들의 모범으로 남았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 월곡고려인문화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sctm01@hanmail.net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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